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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합창단 주최 1회 국제합창축제

합창과 중창

by 클래식 카테고리 2024. 10. 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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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름다운 소리를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만, 아름다움의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맛없는 음식은 분명해도, 맛있는 음식이 다양한 것과 같다. 그런데 예술을 전공한 사람일수록,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없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고, 다양한 아름다움의 길보다는 자신이 배운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성악은 그런 고집이 유독 강한 분야이다. 몸이 악기이고, 다양성을 스스로 확보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합창단에 들어갔다면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수련보다 노조 활동이 삶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

오늘 국립합창단이 주최한 세계합창축제는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내 확신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태국팀, 인도네시아팀의 소리는 분명 흔히 알고 있던 합창단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부른 한국곡의 가사 전달력은 국립합창단보다 더 뛰어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의 합창단은 공명감에 초점을 맞춘 발성을 중시하는 노래를 했지만, 태국팀, 인도네시아팀은 공명감보다는 하모니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은 이야기하듯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립합창단이 못 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주만 놓고 본다면, 국립합창단은 단연 비교 불가 수준의 퀄리티였다. 그런 퀄리티가 나온 것도 아마 공명감이 살아 있는 하모니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느끼지만, 가사 전달력은 아쉽다. 공명감도 높이고 가사 전달력을 향상시키려면 더 많은 수련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합창단이 가사 전달력에 초점을 맞추면 소리가 융합되기 어려워진다. 그 절묘한 수준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음향학, 음성학을 공부해야 한다.

이 축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합창 경연이나 축제에서는 쇼콰이어가 대세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축제의 목적이 "한국 가곡을 세계에 알리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쇼콰이어는 합창과 안무를 종합하는 것인데, 화려한 뮤지컬 쇼에서 하모니가 강화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쇼콰이어는 무대 하나 하나가 재미있고, 감동적이긴 한데, 아쉬운 것이 감동의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쇼콰이어가 역동성이 강하다 보니, 길게 이어갈 수는 없는데, 그로 인해 감동을 켜켜히 쌓을 수 있는 스토리 전개가 어렵다. 뮤지컬에서도 화려한 안무 뒤에는 한 템포 쉬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쇼콰이어는 재미있는 최근의 트렌드가 될 지언정, 합창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합창이 심포니나 오페라가 주는 감동을 주려면 역시 무대가 스토리로 엮여 있어야 하고, 그 스토리는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서로 다른 3곡 또는 4곡으로 하나의 스테이지를 만들고, 그것으로 서너 스테이지를 발표하는 합창 연주회는 따분할 수 밖에 없다. 개별 곡에 대한 감상을 제외하고는 감동의 깊이를 더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주회가 구성되면, 결국 박자, 음정, 밸런스를 분석하는 기술적인 재미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어떤 곡이 좋았고, 어떤 곡은 아쉬웠다는 평가 말이다. 심포니나 콘체르토는 그런 분석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감동을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창이 가야할 길도 결국 어떻게 연주의 스토리를 구축하고, 감동을 쌓을 수 있게 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심포니처럼 비언어적이지 않고, 명백한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하나의 연가곡을 연주할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국립합창단의 최근 연주는 주목할 만하다. 감동이 쌓일 수 있도록 정밀하게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제합창축제는 잠시 쉬어가는 무대인 셈이다. 국립합창단은 보여 줄 수 없는 합창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더불어 한국 합창곡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다. 누가 더 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에 다양한 아름다움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PS1. 한국 합창곡을 무대에 올린 시도는 좋았지만, 어느 합창단은 연습이 부족하여 다른 곡과는 달리 베이스 소리가 많이 비었었다. 연습시간이 부족했거나, 연습을 형식적으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PS2. 인도네시아 합창단이 정말 훌륭했다. 간절함이 빛을 발했다고나 할까.

PS3. 대부분의 합창단이 아카펠라로 연주했다.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경연대회에서 통상 아카펠라가 수상에 유리한데 아마도 대회 수상곡이 아니었을까 싶다.

PS4. 우효원의 아리랑을 앵콜로 할 때, 놀라웠던 것은 반주자였다. 원곡에서는 타악기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 타악기의 비트감을 피아노로 커버했다. 반주자가 이날 연주의 30% 지분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 소프라노 솔로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 부분도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역시 소프라노 파트장의 실력이 좋다. 편곡의 묘미도 좋았다. 역시 민인기 지휘자...

PS5. 국립합창단이 경복궁타령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경복궁타령은 경복궁이 지어져서 좋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열받는데 어이없어서 신나게 부르는 해학의 노래다. 그래서 경복궁이 무너질 듯한 느낌이 어느 한 지점에서 나면 좋다. 그게 잘 느껴졌다.

PS6. 명태의 테너 솔리스트는 볼 때마다 경이롭다. 베이스 솔리스트의 연기와 외모 때문에, 노래 실력이 묻힐까 걱정이었다.
PS7. 서시를 좋아한다. 서시를 연주한 인도네시아 합창단에게 찬사를 보낸다. 가사 전달력도 너무 좋았다. 모든 연주가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인도네시아 합창단을 다시 보고 싶다. 다른 레퍼토리로 말이다.


2일차 공연 소감.

민인기 지휘자는 전략가다. 합창계에서 들리는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는 좋은 합창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타협도 할 줄 알고, 자기 세력도 만들고, 대중들이 좋아할 모든 것을 다 한다. 그 모든 것이 국립합창단 지휘자로서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임기응변에도 뛰어나다. 1일차에는 앵콜곡 촬영을 못 하게 하고, 2일차에서는 촬영을 하게 했다. 아마도 1일차 공연팀인 인도네시아팀의 복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밀림 원시 부족의 복장을 한 2명의 단원이 있었는데 이것이 촬영될 경우 인도네시아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강화될 우려가 있었고, 주최자로서 참가팀을 보호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조치였다. 그의 훌륭한 인권 감수성에 박수를 보낸다.

국립합창단의 공연을 보면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매우 듬직하다.

1일차 공연팀에서 인도네시아팀이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다면, 2일차 공연에서는 말레이시아팀과 필리핀팀이 더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말레이시아팀은 첫번째 곡에서 지휘자 없이도 템포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정확히 오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든 곡에서 엄청난 연습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앵콜곡에서도 그들은 우효원의 아리랑을 외워서 불렀다. 6개 초청합창단 중 유일했다.
필리핀팀은 6개 초청합창단 중 가장 많은 환호를 받았다. 한 스테이지로 감동의 스토리를 구성했고, 음향의 응집과 확산, 그리고 관객으로까지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악적 발성도 탁월했고, 가요도 김범수 싸다구를 몇 번 때리고도 남을 정도로 잘 불렀다. 모든 곡이 소름 돋을 정도로 훌륭했다.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었으나, 뒷 좌석의 관객을 배려해서 참았다.

내년에 2회 국제합창축제를 개최하면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람하길 적극 권한다. 다만 핸드폰은 꼭 꺼 달라고 부탁드린다. 어제도, 오늘도 내 옆자리에서 공연 중에 핸드폰이 울렸었다. 합창단이 클래식으로의 입문이기 때문에, 클래식 관람 기본 에티켓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오시다 보니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나는 다른 것 부탁하지 않는다. 핸드폰만 끄자. 그게 힘들면, 비행모드라도 좀 부탁하자. 공연 중에 부스럭 거려도 참을 수 있고, 졸립다고 음료수 뚜껑 따도 괜찮고, 당이 부족해서 사탕 까는 소리 들려도 괜찮다. 공연에 많이 오면 모두에게 좋으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딱 하나 핸드폰만 부탁드린다.

PS7. 중국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팀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이다.
PS8. 오늘 앵콜에는 앞서 말한 대로 타악기가 추가되었는데, 후반 부분에서 박자가 안 맞아서 합창단원들이 약간 당황해 했었다. 연습 부족이 보였다. 그래도 태연한 척 잘 넘어 갔고, 그 전에 잘 했으니 훌륭하다.
PS9. 외국합창팀이 부르는 테스형이나, 봄비 같은 곡은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합창은 클래식의 대중화를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PS10. 말레이시아팀의 남성파트는 킹스싱어즈와 같은 소리를 냈었다. 딱 그 팀만 떼어 내면 그런 소리였다.
PS11. 필리핀팀에서는 카운터테너 소리를 내는 남성 단원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말고...
PS12. 국내 수많은 시립합창단원들이 이 국제합창축제를 봤어야 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시립합창단은 20명 남짓의 앙상블로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이 옳다는 것을 다시 재확인하는 국제합창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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