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음악을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의 상상을 선율 위에 태워 보내면 된다. 음악 감상은 일종의 즉석 소설 쓰기이고, 즉석 그림 그리기이고, 즉석 여행하기와 같다. 나는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많은 상상을 한다. 각 악장의 앞부분 선율을 들으면서 날씨와 장소를 상상 속에서 그린 후에, 나비, 꽃, 숲, 사람들을 채워 넣고, 나의 과거 이야기를 넣기도 한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때도 있고, 그저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에 여러 형식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음악을 내 마음에 자리 잡게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40분에서 1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이것은 나만의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다.
물론, 연주가 훌륭해야 이것이 가능하다. 딱딱하거나, 밸런스가 맞지 않거나, pp와 ff의 폭이 좁다면 머리 속에 그리는 이야기와 그림도 퉁명스러워지고, 연주 내내 "이 사람들이 어딜 또 틀리나?" 하면서 예민하게 음악을 듣게 된다. 그 순간 음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빌미가 된다. 이것은 마치 맛없는 음식점에 가면, 이 잡냄새가, 이 불쾌한 탄맛이, 이 텁텁함이 왜 생겼는 지를 밝히곤 음식을 다 먹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다. 난 아무리 정확한 연주라 하더라도 흐름을 깨는 연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음악 감상에서 더 자유롭고, 3가지 조건(밸런스, 명료성, 섬세함)만 충족하면 모든 것에 관대해지고, 감상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흑백요리사가 인기다. 흑백요리사를 보면, 대가의 요리가 젊은 요리사들에게 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눈을 감고 음식을 평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대가는 그저 편견의 결과일 뿐이고, 명성이란 결국 그 편견의 축적일 뿐이라는 것을. 대가들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비평에 귀를 열어야 한다. 대가들의 음악이 흐름에 있어서는 딱딱한 경우들이 많다. 표현의 자유로움이 없다고나 할까.
누군가 기술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그것이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면, 그렇게 되도록 설명한 사람은 소위 "대가"이고, 추상적으로 들어오거나, 너무 디테일에 집착한다면 "대가"라 보긴 어렵다. 음악의 본질은 즐거움과 행복에 있지, 연주를 누가누가 잘하나에 있지 않다. 나에게 어떤 악장의 어느 부분은 잘 했고, 어떤 부분은 못 했다는 감상 표현은 내가 지향하는 음악 즐기기가 아니다. 요리도 결국 스토리가 명확히 전달될 때 좋은 요리라는 안재성 셰프의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술도 결국 이 세상의 행복에 이바지할 때 기술이 될 뿐이다.
그래도 좀 명성이 있는 사람들의 연주를 들을 때에는 편안해진다.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연주자의 연주에게 모든 관객이 감탄하는 연주를 내가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깨 줄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 대가의 연주를 볼 기회가 있을까? 임윤찬의 하우스콘서트 공연 당시에, 임윤찬은 정말 잘 한다고 말 했던 관객은 몇이나 있었을까? 국립심포니의 2024년 9월 26일(목) 정기연주회 1부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 2024년 퀸엘리자베스 콩쿨 바이올린 우승자, 드미트로 우도비첸코. 물론 그가 콩쿠르 우승자라는 명성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그렇게 연주를 잘할 수가... 국립심포니의 백업도 너무 훌륭했다. 절묘한 밸런스가 얼마나 심장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는지 보여주는 연주회였다. 물론 곡 선정도 너무 훌륭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자 Op.47 은 바이올린 연주가 너무 현란함으로 빠지지도 않고, 바이올린 독주, 더블베이스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입체감, 바이올린과 목관악기의 절묘한 주고받음이 훌륭했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협주곡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만 들었었고, 악기에서 바이올린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김봄소리와 라파우 블레하츠의 연주를 보면서도 뭐가 좋은 지 모르겠다 싶어서, 심포니의 연주만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스토리를 읽기 힘들고, 그 선율로 그림을 상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량을 자랑하는 잘난척 하는 연주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립심포니는 피아노협주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첼로 협주곡도, 바이올린 협주곡도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의 앙코르 독주를 통해 실내악의 세계, 현악 리사이틀의 세계로 안내해 준다. 국립심포니가 해야 할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우도비첸코는 마치 다닐 트리포노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순박해 보이지만,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미칠 듯한 집중과 감수성으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심포니와의 주고받음도 훌륭했고, 앙코르 곡에서는 관객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연주가 끝난 후 "우우우와와와~~~" 하는 소리를 냈었다. 당연히, 바이올린에 편견이 가득한 나도 그런 놀라움의 소리를 냈었다. 어떻게 관객이 약속이나 한 듯이 감탄사를 쏟아냈을까?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https://youtu.be/Ie2qcLVJRNc?si=nNyA7ySzblAdjDU8
2부 슈만 교향곡 4번 1841년 악보 버전의 연주도 너무 훌륭했다. 늘 말하지만, 국립심포니의 연주에는 흠잡을 것이 없다. 밸런스, 표현의 풍성함, 표현의 명료함 모두 훌륭하다. 마음 편히 슈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슈만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진지함 속에서, 장난끼를 보기도 하고, 장엄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형식을 지키면서도 형식을 파괴하는 듯한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는 연주였다. 특히 연주의 입체감이 너무나도 잘 살아 있었는데, 소리의 밸런스를 깨지 않고, 소리의 중심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것도 너무 훌륭했고, 쨍하듯 나오는 표현력과 섬세한 피아니시모의 표현도 너무 좋았다. 1악장부터 4악장 30여분을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고, 쉬지 않고 들어야 했지만, 연주가 "이렇게 빨리 끝났나?" 느낄 정도로 연주가 재미있었다.
앙코르 곡의 선정도 정말로 센스가 넘쳤었다. 슈만의 제자이자, 슈만의 아내의 불륜 상대였던 브람스의 민속음악의 선율이 가득한 헝가리무곡 중 가장 유명한 5번이었다. 슈만과 시벨리우스의 곡을 연주했으니, 앙코르는 브람스인 셈이다.
올해 좋은 연주를 너무 많이 들었다. 기억나는 것은 국립합창단의 여름합창축제, 국립심포니의 볼레로, 국립 오페라단의 죽음의 도시, 앙드레 마르크 아믈랭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다닐 트리포노프의 롯데콘서트홀 연주 등 참 많은 감동적인 연주를 들었다. 오늘 1부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까지 들었던 최고의 콘체르토 연주였다. 2부 슈만 교향곡은 지금까지 들었던 연주 중 가장 재미있는 연주였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굳이 흐릿한 기억을 꺼내어서 연주회의 1등 찾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내 심장을 울렸던 최근의 연주가 내 생애 최고의 연주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그러해야 한다.
어떤 연주회를 듣고 나왔을 때, "올해 최고의 연주였다."라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면, 이전 연주자들에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 대신에 "올해 클래식 덕분에 많이, 자주 행복했었구나..." 라고 연주자들에게 감사해 하면 된다. 최고의 감동을 늘 갱신하는 삶은 찬란히 빛난다.
이번 국립심포니의 정기연주회는 내 생애 최고의 연주였다.
P.S. 데카 코리아에서 국립심포니의 슈만 교향곡 4번 앨범을 발매했다. 아주 따끈따끈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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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홍보팀 내부에 그림과 음악을 모두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에 5만원 걸어 본다. 있다면 그 홍보팀 담당자에게 5만원어치 치킨 쏜다. 음악이 공간을 확장하고, 미술이 정적인 공간에서 멜로디를 보여주고, 문학적 문구로 프로그램북을 제작하고 있다. 언젠가 포스터로 전시회를 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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