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서 예전에 글을 남겨둔 적이 있다. 그 글은 좋은 지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고잉홈 프로젝트같이 지휘가 없는 연주회도 존재하고, 몇몇 교향악단들은 지휘자가 아예 없이 객원들만 연주하기도 한다.
지휘자가 인사권을 갖는 경우와 인사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다를텐데, 상임지휘자라 하더라도 인사권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객원 지휘자라 하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곡에 따라, 그 교향악단이 자주 연주한 곡은 어떤 지휘자가 와도 비슷한 퀄리티를 낼 수도 있다.
그런 변수가 많은 것이 지휘다. 그런데 지휘콩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물음표 하나가 떠 올랐다. 어떻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궁금했고, 그래서 지휘 콩쿨을 직접 관람했다.
먼저 결선이 진출한 3명의 지휘자 모두 훌륭했고, 3시간 동안 고생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난 첫번째 지휘자의 연주에서는 일부러 눈을 감고 들었다. 음악만으로 평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쇼맨쉽으로 좋은 지휘가 평가받을 수도 있기에 눈을 감고 들었다. 그런데 연주가 좀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들었던 국립심포니의 연주와 결이 달랐다. 그럴 수도 있겠고, 곡이 원래 그럴 수도 있겠지만, 표현의 풍성함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지휘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심포니의 피로 누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두번째 지휘자부터는 직접 보기로 했다. 눈으로 지휘자의 의도를 보고 심포니의 연주와의 차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두번째 지휘자는 첫번째 지휘자보다는 표현의 풍성함은 좋았지만 왠지 연주를 따라가는 느낌과 서로 사인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첼로가 주요하게 나오는 부분에서 제1바이올린을 보고 있다든가, 포르테에서 지휘자의 손짓은 포르티시모라든가... 함께 맞춰보지 못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휘자가 실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표현은 나아졌지만 신호가 안 맞으니, 음악이 엇나간다. 소리의 밸런스 측면에서도 베이스 소리가 다소 약한 것이 아쉬웠다.
세번째 지휘자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라흐마니노프의 곡 3악장을 연주했으니까. 그런데, 그가 달랐던 것은 브람스 교향곡 1악장에서였다. 모두 브람스 교향곡 1악장을 지휘했는데, 세번째 지휘자만 표현력이 풍성했다. 국립심포니의 연주력이 살아난 느낌이 들었다. 가장 피로감이 클 때인데, 표현력은 살아있다. 다이나믹하고, 밸런스도 좋다. 드뷔시의 곡을 연주할 때에도 다양함과 오묘함이 살아 있다. 심포니와의 신호에도 어긋남이 자주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라흐마니노프의 곡에서는 운이 따라서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가장 많이 받았다. 리듬감이 가장 있었다는 느낌이다.
지휘자에 따라 심포니가 달라진 것인지, 어제 리허설에서 교감이 있었던 것인지, 국립심포니가 브람스 4번을 최근에 어딘가에서 연주를 했던 것임지는 모르겠으나(내가 알기로는 없다), 운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 치더라도, 국립심포니의 교감이나 피로도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 치더라도, 브람스 교향곡의 1악장에서 느꼈던 차이, 드뷔시에서 느꼈던 차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 브람스 교향곡의 경우 3번이 사실 가장 유리하지 않나...
결과가 나기 전에 이 글을 남긴다. 우승은 심사위원들이 뽑는 것이겠지만, 나는 이런 지휘 콩쿨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
PS1. 장미꽃 향기 가즉한 경연장 아이디어는 누가 낸 것일까? 연주 내내 장미꽃 향에 취해서 좋았다. 그런데 장미는 조화라고 한다. 장미꽃 향기는 어디에서 난 것일까?
PS2. 관객들이 생각 외로 많았다. 심포니 관객들은 무료 입장이어도 관객 매너가 너무 좋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심포니 관객이 관람 매너가 가장 좋다.
PS3. 피아니스트 박재홍도 봤다. 직접 인사도 하고... 피아니스트에게는 이런 연주회가 즐거울 것이다. 얼마전 다른 연주회에서는 임윤찬, 한재민이 왔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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