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많지만 내일을 위해 그래도 잠은 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밤만 깊어졌다.
졸리지 않으려고 아침에 들이 부은 아메리카노와 점심에 들이 부은 까페라떼 때문인지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잠은 자야 하지만 잠이 들지 않는 하루가 내일도 반복될 것이다. 공부든 일이든 집을 떠나와 혼자의 삶을 꾸려 나가는 시간. 모든 것이 엉망이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잠못드는 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립다. 시계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우리집의 냄새. 고등어찜 냄새. 할머니의 체취, 어머니의 화장품 냄새.
시계 초침은 자꾸 집을 떠올리게 한다. 깊은 밤 그리움은 초침 소리에 짙어지다 초침 소리에 다시 옅어진다.
이 그리움으로 잠들지, 이 그리움으로 잠못 들지...
이것이 향수병인가 싶다가도, 열심히 살아야 하니 악착같이 잠을 청한다.
이런 밤을 참 많이도 보냈었다. 그런 아련한 경험. 나의 성장의 음악으로 나온다면 분명 시계 소리로 가득할 지도 모르겠다. 시계 소리를 들으며 공부했고, 치열하게 일했고, 치열하게 그리워했고, 치열하게 울었다. 내가 혼자 성장하고, 혼자 슬퍼할 때 내 옆에는 늘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었다.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노재봉의 "집에 가고 싶어"는 그 향수병의 시작이 시계초침 소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요즘같은 스마트폰의 시대에는 저 초침 소리는 절대 들리지 않지만, 약간이라도 구닥다리 시대를 산 사람들은 초침 소리에 잠을 설치고, 초침 소리에 잠이 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 소리는 소음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하다. 그걸 묘하게 잘 잡아냈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20대로 그대로 소환되었었다. 20대 대학에 처음 올라 와서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첫날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취라는 것을 시작한 날의 첫날밤. 그날밤 나와 함께 했던 것은 초침 소리였다. 그날 나는 성장했고, 외로웠고, 특별했다. 이 음악은 그날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음악이란 위대하다. 나를 그 시절로 옮겨준다. 이날 국립 심포니의 연주는 노재봉의 "집에 가고 싶어"와, 하프 협주곡,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있었지만, 나는 굳이 노재봉의 "집에 가고 싶어"를 한 꼭지로 소감을 남긴다.
창작곡은 오롯이 나의 특별한 무엇을 최초의 것으로 선사한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예술적으로 용감해질 수 있다. 이것이 국립심포니의 연주회가 관객에게 주는 위대한 경험이다.
덕분에 20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갔고, 그날밤 편안하게 잠들었다. 메트로놈 소리는 마치 쉬어 가라는 듯한, 마치 뒤를 돌아보라는 듯한, 마치 함께 가라는 듯한 속삭임이었다. 난 그 박자에 맞춰 오늘도 걸어 보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걸어서 나도 어머니가 계신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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